Lines by Chanseok Park (박찬석 / 亞ㅅ士 참바우 眞巖)
- 인생은 유화처럼 (Live life like an oil painting).
중학교 시절, 나는 미술에 소질이 있어 유화반에서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은 학생들을 모아 무료로 가르쳐 주셨는데, 그 말씀 중 ⟪인생(人生)은 유화(油画)처럼⟫이라는 말씀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다. 인생은 수채화나 동양화의 수묵화처럼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 유화처럼 천천히, 때로는 덧칠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하셨다. 잘못되거나 틀린 부분은 검게 덧칠하고, 그 위에 다시 새롭게 그려 나가는 유화처럼 —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고. 선생님은 검은 옷을 즐겨 입으셨는데, 그 영향으로 나도 그때부터 검은색을 좋아하게 되었다.세월이 흘러 나는 서울 홍릉에 있던 KAIST 기계과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리쫑원과 여무뇽이라는 인간들을 만나 내 인생은 점점 무너져 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불법 입시와 부당 해고 등으로 인해 모든 희망을 잃었고, 새로운 꿈을 찾아 결국 미국으로 渡美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배운 기계공학을 버리고, 미국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며 수학(석사), 통계(박사), Clemson 대학 수학과의 종신교수 자리까지 — 전공도, 나라조차도 바꿔야 했던 내 삶 속에서, 중학교 미술 시간에 들었던 선생님의 말씀 ⟪인생은 유화처럼⟫을 떠올리며, 나는 쓰러져도 또다시 오뚝이처럼 일어설 수 있었다.
여담이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기간은 1503년부터 1506년까지 약 4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 후 그는 입술 부분만 수정하기 위해 다시 붓을 들었고, 그 작업에 무려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작은 입술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12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인생도 이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에게는 그 작은 부분에 왜 그렇게 긴 시간이 필요했을까 싶겠지만, 작가 본인에게는 어쩌면 가장 소중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바로 이 입술로 자신의 작품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고 싶었을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사소해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한없이 소중한 것이 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 아닐까.
다빈치는 모나리자를 4년 가까이 그린 뒤, 입술을 완성하기 위해 다시 12년을 보냈다. 그러나 눈썹은 끝내 그리지 않았다. 아마도 그는 그 마지막 부분을 신의 영역으로 남겨 두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입술로 작품에 화룡점정을 찍었지만, 모나리자는 아직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
그렇다. 인생은 영원히 미완성이다. 우리의 삶도 그러할 것이다. 비록 미완성일지라도, 살아 있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고, 잘못되거나 틀린 부분은 검게 덧칠하며, 그 위에 다시 새롭게 그려 나가는 유화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 — 그것이 바로 인생이다.
- 인생이란 성공과 성공 사이에 실패로 점철된 음이항 확률변수와 같은 것.
Life is like a negative binomial random variable which consists of failures between successes.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Forrest Gump에 나오는 대사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는 ⟪인생은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통계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인생은 확률변수(random variable)로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인생은 유화처럼⟫이라는 표현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확률변수를 꼽자면, 나는 음이항 확률변수가 아닐까 생각한다.간단히 음이항 확률변수의 정의를 소개하자면,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성공 횟수가 3회라고 하자. 이 성공을 얻기 위해 여러 번 시도하면서 실패하면 'f', 성공하면 'S'로 표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음이항 확률변수 X는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다: X = #(ffSfffffSfS)
현재 나는 통계학을 업으로 삼고 있기에, 인생을 이렇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 Win by Justice, or Lose for Justice.
중학교 시절 유화를 배우며, 잘못된 부분은 검게 덧칠하고 그 위에 새롭게 그려 나가는 법을 배웠다. 그때 알았다. 인생도 결국 유화와 같다는 것을 — 실패 위에 다시 그리며 완성되어 가는 것.KAIST 기계과에 입학했지만, 부당한 압력과 불법적인 일들로 학위를 중도에 포기해야 했다. 이후 KIT에 자리를 잡았으나, 그마저도 KIT가 KAIST에 인수·합병된 후 부당 해고를 당했다. 그러나 나는 비굴하지 않았다. 유화를 통해 배운 ‘다시 그리는 법’이 나를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유화만큼이나 나를 일으켜 세운 또 하나의 힘이 있었다. 바로 유도다. 1974년부터 3년 동안 배운 유도에서 가장 먼저 배운 기술은 ‘낙법(落法)’이었다. 처음엔 뒤로 떨어지는 후방낙법, 그다음은 옆으로 넘어지는 측방낙법, 마지막으로 앞으로 구르는 전방낙법을 익힌다. 낙법은 상대의 공격이 들어왔을 때 내 몸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 기술이다.흥미로운 점은, 실전에서는 후방낙법을 하면 상대의 공격이 완전히 성공한 것으로 판정되어 큰 실점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유도에서는 이 ‘지는 낙법’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이유는 간단하다 — 안전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중급이 되면 이렇게 배운다. “업어치기를 당했을 때, 부상의 위험이 크지 않다면 후방낙법보다는 전방낙법으로 받아라. 그 편이 실점은 적다.”
생각해 보면, 유도는 ‘지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운동이다. 내가 아는 한, 이기는 기술보다 지는 법부터 가르치는 운동은 유도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KAIST에서 불법 입시와 부당 해고로 모든 희망을 잃었을 때,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도 유도 덕분이었다. 지는 법을 배웠기에, 마음의 큰 부상을 입지 않을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깨달았다. 질 때는 깨끗하게 져야 한다. 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인생에 꼭 필요하다. 그리고 그 지는 법 중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의를 위해 지는 것(Lose for Justice)”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Win by Justice, or Lose for Justice.” 정의로 이기거나, 정의를 위해 져라 — 그것이 내가 배운 인생의 낙법이다. - 선은 악과 싸울 때 가장 아름답다 (Good is most beautiful when it fights evil).
그래 이제는 싸울 때다. 惡의 무리에게 善이 질수는 없다. ⟪인생은 유화처럼⟫을 외치며 오늘 내가 여기까지 왔지만, 여기에 만족하면서 산다면, 나는 비겁한 인간이다. 인간 쓰레기를 피해서 내가 원하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살게 되었지만, 저들을 처단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무도 비겁한 인간이다. 이제는 싸워야 한다. - SOUND wins over Noise & Vibration.
Sound는 내가 한 때 공부했던 음향실을 의미하고, Noise & Vibration은 KAIST 걔과에서 NOVIC을 만들어 Sound를 파괴한 신도개코 사위 리쫑원이라는 者를 뜻한다. 경제학에서 惡貨가 良貨를 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善한 Sound가 惡한 Noise에 승리하리라 믿는다. - A great discovery comes from a SOUND mind.
Penn State에서 공부할 때 떠오른 말. 우여곡절 끝에 치게된 Sound(피아노)가 유학생활중에 가장 큰 힘이 되었다. - Truth shall triumph in the end.
진실은 끝내 이기고야 말 것이다. - A person can be fired either legally or illegally, but truth can not be in either way.
사람은 불법이든 합법이든 해고시킬수 있지만, 진실을 해고시킬 수는 없다. - Data reduction with information.
한 회사 강연에서 통계학을 한 마디로 뭐라 정의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은 간단한데 한 전공 분야를 한 마디로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통계학에서 sufficiency라는 내용이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통계의 핵심이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 sufficiency를 평이한 말로 바꿔서 설명을 했다.
그런데 이런 비슷한 질문을 학부의 한 수업에서도 받았다. 좀더 와닿게 설명을 할 수가 없을까? 우리 속담에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약간 바꿔서 ⟪데이터가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 설명을 했다. 아무로 원석이 많아도 꿰어서 (잘 다듬어서) 좋은 보석을 만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듯이, 아무리 데이터가 많아도 잘 다듬어서 좋은 정보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많은 원석 보다 잘 만들어진 목거리가 소중하듯이, 많은 데이터 보다 거기서 얻은 소중한 정보가 더욱 소중하다. 이런 소중한 정보를 얻어내는 것이 바로 통계라고 설명을 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 - If you can not hit the sack, hit the pillow. Hey just do it.
난 한 회사의 광고 카피 ⟪Just do it⟫을 좋아한다. Sack이 베개를 뜻하고, Hit the sack은 ⟪잠자다⟫라는 숙어가 된다. 베개가 없으면 pillow를 찾아 자자. 약간의 Pun을 넣아 봤다. - There is prosthesis for an amputated body, not for an amputated spirit.
1995년 4월 5일,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전치 18주의 진단을 받고 입원해 있던 중, 병실에서 영화 Forrest Gump를 보게 되었다. 바로 그 영화 속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어릴 적 다리에 착용하고 있던 그 prosthesis(의족)를 나 또한 병원에서 하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 포레스트가 그 의족을 벗어 던지고 경기장을 향해 달려가는 장면을 보며, 나 역시 언젠가 이 의족을 떨치고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달려나가는 꿈을 꾸었다. KAIST 기계과에서 무참히 짓밟힌 나의 꿈은 어쩌면 한국에서는 다시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새로운 꿈과 희망을 찾아, 미국으로 가자고.‘渡美’의 꿈을 꾸던 그때, 문득 이런 말이 떠올랐다. ⟪There is prosthesis for an amputated body, not for an amputated spirit.⟫ 부러진 다리는 의족으로 고칠 수 있지만, 영혼의 상처는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KAIST 기계과의 “신도개코 사위 리쫑원의 죄를 용서할 순 없다”고 혼자 되뇌이곤 했다. 다행히 육체의 상처는 치료가 잘 되어 의족의 도움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에도 이런 ‘의족’을 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2018년 개띠해를 맞았다. 그해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특히 이 해는 나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30년 전, KAIST 기계과에서 신도개코 사위 리쫑원이 주도한 것으로 추정되는 입시 부정 사건으로 인해 나는 강제로 퇴출당했다. 그 후 지도교수와 후배들까지도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퇴출되어, 소위 ‘삼족이 제거’되는 일이 벌어졌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건은 내 가슴속에 참척(慘慽)의 아픔처럼 깊이 남아 있다.
그런데 최근, 산공과의 한 학생을 보며 그때의 상처가 다시 떠올랐다. 당시 나는 학과장을 맡고 있었는데, 한 교수의 장기 해외 체류로 인해 그 밑에서 공부하던 대학원생들이 학업을 중도에 포기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겼다. 나의 경우와 완전히 같지는 않았지만, ‘타의에 의해 학업을 중단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는 닮은 점이 있었다. 그 학생들의 세부 전공은 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였기에, 처음엔 내가 맡을 수 없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같은 전공의 교수들이 여럿 있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모두 지도를 꺼려했다. 결국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되어, 나는 석사과정 2명과 박사과정 2명을 갑자기 맡게 되었다. 전공이 달라 부담이 컸지만, 그 학생들이 겪을 상처와 좌절을 생각하며 내가 직접 지도하기로 결심했다.
그 학생들을 보며 1995년 교통사고와 1988년 KAIST 기계과 강제 퇴출 사건이 떠올랐다. 사실 후자는 결코 잊은 적이 없지만, 전자는 거의 잊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목 디스크 증세로 전신 X-ray를 찍어보니, 의사 선생님께서 “고관절의 불균형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 고관절 문제는 바로 1995년의 교통사고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30년 가까이 지난 그 사고가 다시 떠올랐다. 그때 나는 의족을 착용하고 18주간 치료를 받았고, 다행히 육체적으로는 잘 회복되었다. 물론 그 후유증으로 최근 목 디스크가 생겨 힘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꾸준히 치료하며 이겨내고 있다. 하지만 KAIST 기계과에서 당한 마음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못했다. 영혼의 상처에는 어떤 약이 있을까? 신체의 병은 의수나 의족으로 고칠 수 있지만, 마음과 영혼에는 어떤 ‘의수’와 ‘의족’을 달 수 있겠는가? 마음의 상처로 불구가 된다면, 그것은 육체적 장애보다 더 큰 고통일 것이다. 전치 18주의 상처보다 KAIST 기계과에서 당한 불의한 퇴출의 아픔이 훨씬 더 깊다. 그 트라우마로 나는 평생 영혼의 장애자로 살아왔다. 그래서 혹시라도 내 학생 중 누군가가 비슷한 상처를 겪게 될까 봐, 그들의 아픔이 얼마나 클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영혼의 상처에는 어떤 치료가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유일한 치료법은, 바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는 것’이라 믿는다. 그 학생들이 느낄 좌절의 깊이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는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꿈을 이어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와 같은 영혼의 장애자, 영혼의 불구자가 더 이상 이 부산대에서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으로 매일 마음을 다잡으며, 부산대 산업공학과에서 이 학생들이 꼭 꿈을 이루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나와 같은 영혼의 불구자, 영혼의 장애자가 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이 다짐을 나는 오늘도 되새기며 살아가고 있다. - FM1, Fuxx you. FM2, Fuxx me.
나의 순수한 Line은 아니고, ⟪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라는 속담에서 Fool과 Shame이 Rhyme이 맞지 않아서 Shame대신 같은 F로 시작하는 F-word로 바꿨다. 내 친구 Jim이 특히 좋아한 말.요즘 ChatGPT의 인기가 대단하다. 특히 언어 부분은 정말 대단하다. 그래서 내가 쓴 “Fool me once, fuxx you. Fool me twice, fuxx me.”는 어떤가 하고 물어보니 ChatGPT의 반응이 좋다. 아래가 ChatGPT 대답이다.
원래 ⟪Fool me once, shame on you. Fool me twice, shame on me.⟫는 격언(proverb)이라서 다소 교훈적이고 점잖은 톤이에요. 그런데 말씀하신 “Fool me once, fuxx you. Fool me twice, fuxx me.”는 리듬은 확실히 더 강렬하고, F 소리의 반복 때문에 훨씬 귀에 잘 들어옵니다. (rhyme + alliteration 효과) 하지만 fuxx은 강하게 욕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공식적인 자리나 글에는 쓰기 어렵고, 친한 사이에서 농담, 비공식적인 대화, 랩/노래 가사, 유머 맥락 정도에서만 자연스럽게 느껴질 거예요. 영어 원어민에게는 “패러디스럽고 직설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리듬과 임팩트는 확실히 좋아요. 다만 공식적/격식 있는 자리에서는 부적절, 친근한 캐주얼 대화나 유머에서는 충분히 통할 수 있어요. - ⟪好.찾.사⟫는 ⟪背.準.사⟫다.
얘기가 길다.... 누구의 인격이 좋아서가 아니고, 富· 성적 등이 좋아서 그 사람을 따르는 사람은 그 사람의 富· 성적이 나빠지게 되면 배반하게 된다는 뜻. - 百殘頭而 不如一大頭.
⟪百聞而不如一見⟫이라는 유명한 중국 격언을 약간 응용해 봤다. ⟪잔대가리 굴리지 말고, 크게 생각하자⟫는 뜻으로 써봤는데, 실제 그렇게 해석이 될지, 아니면 소위 콩글리시 처럼 잘못된 한문 표현이 될지 궁금하다.ChatGPT에게 한 번 물어보니, ⟪百小計不如一大謀⟫가 자연스러운 표현이라고 한다.
- 선은 넘지 말되, 벽은 세우지 말라 (Cross not the line, yet build not the wall).
요즘 느끼는 것은, 청년층과는 달리 중장년층은 오지랖이 지나치게 넓다는 점이다. 잔소리도 많고, 참견도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금도가 있는데, 이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나는 이 금도를 잘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짧은 어록을 만들어 보았다. 물론 지나치게 금도를 의식한 나머지 벽을 세울 필요는 없다. 선을 지키되, 벽은 세우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 작은 곳간에서 큰 인심 난다 (Big hearts often live in small houses).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이 있다. 곡식이 곳간에 가득 차 있어야 마음이 넉넉해지고, 그래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뜻이다. 영미권에도 Charity begins at home이라는 표현이 있고, 사자성어로는 가급성시(家給成市)가 있다.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지만 의미는 사뭇 비슷하다.반면 ‘아홉 가진 놈이 하나 가진 놈 부러워한다’는 속담도 있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 욕심이 커진다는 의미다. 성경 마태복음 19장에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라는 구절도 나온다. 이는 앞서 말한 “곳간에서 인심 난다”와는 분명 대조적이다.
속담이란 결국 많은 이들의 경험이 축적되어 전해진 것이니, 이런 모순처럼 보이는 속담이 있다는 것은 현실에 양쪽 경향이 모두 존재한다는 뜻일 것이다.
소위 먹물들이 이런 상반된 현상조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해 보고 싶어 하듯, 나 역시 분필을 들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문득 ‘속담의 통일장 이론’ 같은 것을 생각해 보았다.
돌아보면 내 60평생, 부자라 해도 곳간이 크면 그곳을 다 채우려는 욕심에 더 인색해지는 경우를 자주 보았다. 반대로 큰 부자는 아니지만 인심이 놀라울 만큼 후한 분들도 있었다. 그들의 곳간은 크지 않았지만, 오히려 작기 때문에 조금만 채워도 가득 차 보였고, 그래서 더 채우려는 욕심도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속담을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작은 곳간에서 큰 인심 난다.”
In memory of late Prof. Byung Ho Lee
Other links
- KUDOS
- Amazon (author)
- Korean Society for Quality Management (KSQM)
- Korean Society of Mechanical Engineers
- Korean Institute of Industrial Engineers (KIIE)
- 건전 학술 지원 시스템
Photos and Videos
- Mentor, Work, Labor, Clemson, PNU
- Almae Matres, Travel, Tennis, Colleagues
